[최경규의 행복산책] 그랬구나, 내가 많이 힘들구나
[최경규의 행복산책] 그랬구나, 내가 많이 힘들구나
  • 논설실
  • 승인 2022.11.07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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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포스트] 맛있는 음식을 먹다 과식으로 체한 적이 있는가? 누구나 몇 번의 경험은 있을 것이다. 완전히 막힌 듯한 기분에 물조차 입에서 넘어가지 않을 때,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한다. 손끝을 따기도 하고, 구급약 상자를 찾아 소화제를 먹기도 한다. 이런저런 방법을 사용하다 보면 어느새 조금씩 나아지는 듯하고 비로소 숨구멍이 터진다는 느낌이 든다. 불과 몇 분 사이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건너온 듯한 생각마저 들 때도 있다. 마치 빽빽한 벽돌로 막힌 가슴에 난 작은 구멍으로 숨을 쉬기 편한 느낌으로, 평온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글은 언제 쓰는가요?” 새벽 시간을 정해놓고 쓰기도 하지만, 때로는 마음이 체한 것 같을 때 펜을 든다고 나는 답한다. 마음속 감정이 정리되지 못하고 오랫동안 지속될 때, 우리의 마음은 현기증을 느낀다. 마치 뿌연 연기 속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듯한 그런 감정, 그때 우리에게 어렴풋이 저 멀리 보이는 등대 같은 존재가 바로 글이다.

내 감정을 고스란히 종이 위에 적다 보면 투박한 글 속에 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사람과 미처 정리하지 못한 아쉬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정작 해야 할 일은 못 하고 삽질만 한 것 같은 어리석은 모습들 사이에서 때로는 자기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도약을 위한 반성도 글 사이에 비치기도 한다.

심리 상담 때 아무리 노련한 선생님이라 할지라도, 누구도 정답이라 외치며 이것만 해결하면 될 거라 말하지 못한다. 사람의 마음인지라 하루에도 오만가지의 생각을 하며 갈등의 선택지 위에서 방황하기 때문에 확실한 처방전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보다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 그런 시간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거나 방황의 시간을 줄여나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글이다. 이런 의미에서 글을 쓰는 일은 신성한 작업이다. 목적성이나 의도를 가지지 않고 써 내려가는 자유분방한 글 속에서 우리는 위로를 받을 수 있다.

 

그랬구나, 내가 많이 힘들구나,

그랬구나, 그 사람 참 너무하네,

그랬구나, 인연이 다해가는 것을 인력으로 해결할 수는 없구나,

너무 힘들어하지 마, 네 잘못이 아니다.

 

글을 쓰는 동안, 이런 말들이 귓가에서 들리는 듯하다면 이미 치유가 진행되는 과정이라 보면 된다. 글은 언제나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이자 애인이자 동반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또한, 글을 쓰다 보면 마음이 정리되고 마음이 정리되면 생각지 못한 시간들도 보인다. 다시 말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하여 보이고 그런 시간을 만들기 위해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일들이 정리되기도 한다. 하늘 위에 올려진 풍선을 보면, 이미 구름 사이로 가려져 잡을 수도 없을 것 같지만, 아직 방 안에 있는 풍선을 얼마든지 다시 내릴 수 있다. 글을 쓰는 순간, 풍선은 조금씩 당신의 시야로 그리고 손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무엇이 힘든가, 무엇이 괴로운가? 혹시 어젯밤 베개를 눈물로 적시고 쓴 소주로 시간을 보내었다면, 오늘은 종이 위에 당신의 이야기를 써보길 바란다. 신춘문예도 노벨 문학상을 기대하는 글이 아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당신의 괴로움, 나조차 잡을 수 없었던 내 갈등을 종이 위에 적다 보면 어느새 막혔던 내 마음의 체함도 내려갈 것이다.

 

최경규/행복학교 교장, 작가
최경규/행복학교 교장,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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