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로 내려가 야구를 전파할 때 나의 마음 자세는 “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민간 외교관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할 때 늘 조심한다.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되었던 것도 아니다. 젊은 시절 평생 한길로 달려온 나에게 난생 처음 홀로 미국으로 지도자 연수를 떠났을 때의 막막함은 잊을 수가 없다.
이때는 모든것들이 다 낯설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절이다. 그럼에도 나의 마음 한편에는 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이기 때문에 나 한사람으로인해 혹 대한민국을 욕되게 할 수 있다는 걱정을 하며 항상 행동이나 말을 조심했었다.
시카고 화이트 삭스 팀에서 지도자생활 할 때 팀에서 나에게 붙혀준 별명이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가 : Ambassador of Chicago White Sox
두번째가 : Big smile man
동남아에 내려가 야구를 전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들에게 멋지고 위대한 대한민국을 함께 알려야 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행동했다.
처음에는 어느 누구도 나와 대한민국 그리고 야구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이들과 함께 수년 동안 함께 땀 흘리고 함께 웃고 함께 식사하니 어느새 나를 통해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 관심을 갖게 되고 또 나와 함께 야구가 어떤 운동이고 어떤 스포츠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많은 젊은이들이 알게 되었다.
외국에 나가면 모든 사람들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인것 같다. 국내에 있을 때 이 정도까지 신경을 쓰거나 행동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행동하고 생각나는 대로 말을 했다. 그러나 외국에 나가니 나 한사람으로 인해 대한민국 전체가 욕을 얻어 먹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인해 늘 조심하며 행동했다.
지난 6월 14일 베트남에 있는 박효철 감독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감독님, 베트남 야구협회 쩐득판 회장이 한국에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쩐득판 회장이 한국에서 TV로 야구보는 장면을 찍어서 보내 주었다.
'한국에 어떻게 들어왔고 왜 들어왔는지 알 수 있느냐? 그리고 언제 다시 베트남에 들어가고, 숙소는 어디고, 누구와 통화를 하면 되는지 알려 달라'고 했더니 몇시간 되지 않아 연락이 왔다.
다행히 베트남에서 통역하는 사람을 데리고 한국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담당자에게 전화해 언제 다시 베트남에 들어가고 언제 시간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은 19일 다시 베트남에 들어가고 시간은 18일 점심시간 밖에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쩐득판 회장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느냐?' 물었더니 '통역하는 본인이 나가게 되면 함께 한국에 들어온 공안들을 돌볼 수 없다'며 '다 같이 나가던지 아니면 쩐득판 회장도 나갈 수 없다'고 한다.
쩐득판 회장과 함께 온 사람들은 베트남 '공안'들이고 이번에 한국에 들어온 것은 정부와의 면담을 위해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18일 점심시간만 된다는 것이다.
쩐득판 회장과 함께 들어온 공안들은 모두 7명, 베트남 같은 사회주의 나라에서 공안들은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는 부서다. 그런 공안에서 이번에 한두 명도 아니고 무려 7명이 쩐득판 회장과 한국에 들어온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일단 통역하는 미스터 '류' 한테 '18일 점심시간 때 함께 만날 수 있느냐?' 물었더니 답변이 오기를 그날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또한 앞으로 베트남 야구를 위해서라도 18일 무조건 시간을 빼야 한다.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을 찾아 18일 베트남 야구협회 쩐득판 회장과 베트남 공안 7명이 함께 동석해 점심을 했다. 쩐득판 회장이 조심스럽게 나에게 알리지 않고 한국을 방문해 우리나라 정부 사람들과 만나 긴밀한 이야기를 했던 모양이다.
베트남 야구협회 쩐득판 회장은 야구협회가 처음 탄생했기 때문에 젊은 청소년들에게 야구를 보급시키기 위해 가장 많이 발벗고 뛰어다니는 분이다. 젊은 시절 러시아와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해와서 국제적 감각이 있다.
베트남은 세계에서도 몇 손가락에 들 정도로 젊은나라에 들어간다. 젊은 나라인 베트남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베트남을 세계에 알리고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베트남을 알릴 수 있을지 많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이다. 그 중에 하나가 야구를 베트남 젊은이들에게 야구를 전파하게 되면 앞으로 뛰어난 선수들이 많이 배출 될 것이라는 것을 쩐득판 회장은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실 베트남은 경제적 기반이나 여러 여건에서 주변국가보다 뛰어난 국가이지만 협회를 통한 조직적인 훈련 체계를 갖추거나 국가대표팀을 통한 경쟁력을 키우는 노력이 최근에야 다시 시작되었다.
야구라는 종목은 매일 연습하고 조직력을 갖추어야만 좋은 기량을 갖출 수 있다. 베트남 선수들은 내가 갔던 라오스에 비해 월등하게 좋은 체격 조건을 지녔고, 좋은 장비와 여건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매일 목표를 가지고 훈련에 열중하는 라오스와의 실력 차는 분명하게 존재함을 느끼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동남아에 내려가 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칠 때 모든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할 때 얼마든지 가능함을 보여준 10년이었다.
베트남 야구가 언젠가 성장하여 가능성을 보여줄 베트남 야구대표팀, 동남아시아를 축구 열기로 사로잡았던 스즈키컵(現 쓰비시일렉트릭컵)처럼 동남아시아를 야구 열기로 채울 그날을 위해 오늘도 땀을 흘리며 달려가고 있다. 불가능의 가능성을 야구를 통해 만들어가고 있음에 야구인의 한사람으로서 감사하다.
이들과 함께 두어시간 맛있는 점심을 하면서 서로 웃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솔직히 며칠 전부터 낯선 베트남 공안을 만난다고 해 조금 긴장했다. 물론 베트남 야구협회 쩐득판 회장과 만나는 일은 너무 편안하고 좋다. 그러나 쩐득판 회장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베트남 공안과 무슨 이야기를 하며 어떻게 이들을 이끌어 가야 할지 정말 막막했다.
그런데 이들 공안들을 만나기 전에 이미 쩐득판 회장이 나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했으면 처음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나에 대해 질문하고 같이 사진도 찍고 서로 웃으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거짓말처럼 얼마나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웠는지 모른다. 서로 웃고 재미있게 지내다 보니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곧 있으면 또다시 나는 7월 2일 베트남에 들어간다. 그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야구를 통해 이렇게 한국을 대표하고 한국을 알릴 수 있어 대한민국 야구인의 한사람으로서 정말 보람을 느끼고 자부심을 갖는 날이다.
[글 /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