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프랑스 예술계에서 주목받는 작가·건축가 손문, 『사계(四季), 스물네 개의 공간(空間)』으로 지혜를 나누고 삶을 치유하다
[인터뷰] 프랑스 예술계에서 주목받는 작가·건축가 손문, 『사계(四季), 스물네 개의 공간(空間)』으로 지혜를 나누고 삶을 치유하다
  • 전진홍 기자
  • 승인 2024.08.14 09: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4 제주 ‘섬, 사람을 잇다 – 여기, 바람이 머물다’ 공동개관전 작가 / 프랑스 국립예술학교 Le Fresnoy 한국인 최초 전시작가
사진 = 손문 건축가가 인터뷰를 앞두고 프랑스 파리의 오페라 가르니에(Opéra Garnier)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오페라 가르니에는 프랑스 파리 9구 오페라 광장 북쪽 끝에 위치한 2200석 규모의 오페라 극장으로, 샤를 가르니에가 신바로크 양식으로 설계한 걸작이다.
사진 = 손문 건축가가 인터뷰를 앞두고 프랑스 파리의 오페라 가르니에(Opéra Garnier)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오페라 가르니에는 프랑스 파리 9구 오페라 광장 북쪽 끝에 위치한 2200석 규모의 오페라 극장으로, 샤를 가르니에가 신바로크 양식으로 설계한 걸작이다.

[잡포스트] 전진홍 기자 =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는 영성 건축 디자이너이자 작가인 손문을 만나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인터뷰했다.

Q: 『사계, 스물네 개의 공간』 작품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S: 절기(節氣)를 알면 삶의 본질이 보인다고 합니다. 『사계(四季), 스물네 개의 공간(空間)』(이하 『사계(四季)』)는 24절기 문화에서 출발했습니다. 한국과 중국 등에서 태양력과 태음력의 차이를 조절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현재는 세계 문화유산 중 하나입니다.

자연의 원리와 질서인 24절기처럼, 인간의 삶에도 계절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작품을 통해 자연과 건축을 병치하여 사계절의 시간성과 삶의 유한함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인류의 다음 단계로 발전시킨 선현들의 공통점은 현실의 경계를 넘어서는 시각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자신만의 테오리아(Theoria), 즉 사물과 세상을 관조하여 설명하는 섬세한 원리와 방식을 논하는 자를 ‘이론가’ 혹은 ‘철학자’라고 한다면, 그것을 표현하고 제작하는 자를 ‘건축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가는 우주적 관점에서부터 미시적 관점인 개별 인간의 몸에 이르기까지, 언어체계와 물성을 동원하여 세상에 대한 논리적인 정의를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합의된 공동의 언어가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며, 마침내 건축이 완성됩니다. 건축은 주변의 사물과 사람, 도시와 자연 간의 상호 관계 속에서 진리를 통찰해 가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이 『사계』입니다.

프랑스의 보르도 건축학과 명예교수인 다니엘. H(Daniel H. Tajan)는 『사계』의 여름을 표현한 'Major heat, 대서(大暑)'와 겨울을 표현한 'Major cold, 대한(大寒)'을 보고, ‘근대주의 건축과 현대 기술의 결합이 만들어낸 브람스 교향곡 1번 C단조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작품에 담긴 삶에 대한 희망과 내면을 치유하는 평안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Q: 베스트셀러 『시퀀스(범우사,2022)』 출간 이후, 예술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S: 이방인으로 미국, 중국, 프랑스를 경험한 건축가가 꿈과 열정을 기록한 『시퀀스』를 출간한 후, 프랑스 파리에서 돌아와 자신을 증명할 작품을 고민하기에 앞서, 건축가로서 존재의 자유와 평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건축의 시작은 자의식을 확립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철학보다 자본이 우선되는 혼돈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서, 건축가는 자신을 불태워 세상에 지혜를 전달하는 제사장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영성의 구축’을 선언하며 비움을 통해 새 생명의 질서를 세우기로 결정했습니다.

한국 전통 건축에서 ‘비움’을 강조해 왔지만, 이번에는 그 한 단계 더 나아가 ‘새 생명의 질서’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살아 숨 쉬는 공간의 분위기, 지속 가능한 운동성, 사물의 치수와 비율, 재료의 본질적인 아름다움 등을 다면적으로 연구하며, 24개의 공간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는 사계절과 24 절기의 절묘한 병치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작품을 지향한 결과입니다.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는 봄과 여름의 발산, 소유, 증식만을 강조해 왔습니다. 반면, 가을과 겨울의 수렴, 휴식, 빈 공간의 가치는 간과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소통을 회복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회복을 지향하는 24개의 작품은 인간과 우주, 삶과 자연의 리듬을 담고 있으며, ‘입춘’부터 ‘대한’까지 사계절을 대표하는 네 작품과 각 절기를 대표하는 스무 개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진 = Son Moon, Major Heat, 대서(大暑), 162.2X130.3cm, 2023

Q: 『4 Seasons 24 Spaces』의 공간 작업 방식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S: 작업은 항상 묵상으로 시작됩니다. 일상이나 여행 중 경험한 특정한 공간에서 깊은 영적 울림을 받곤 합니다. 그 인상적인 공간을 아우르는 사물의 배치와 재료 등을 손으로 그리거나 기억합니다.

건축 설계 시에는 땅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하지만, 『4 Seasons 24 Spaces』 작품들은 내면의 질서를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작업했습니다. 이 방식은 오스트리아 건축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이론을 따릅니다.

그는 “관념에 갇히지 않고, 살아 숨 쉬며 시간을 초월한 건축을 만들기 위해 내면에서 떠오르는 것을 정확히 실행에 옮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깊은 묵상을 통해 떠오르는 영성의 기억 속 공간을 직관적으로 그리며, 3D 기술로 재료와 구조적 디테일을 맞춥니다.

기억 속 이미지에 있는 건축적, 공간적 인상들을 자유롭고 정연한 사고로 구체화하며 이상적인 디자인으로 완성해 갑니다. 『4 Seasons 24 Spaces』는 스위스 발스 건축 기행에서 느낀 절기의 촉감과 물성을 포착한 자연 풍경을 결합한 미디어 작업입니다.

건축적 공간은 주변 시야를 통해 작동하는 자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환경에서 우리는 공간의 중요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존적 차원에서 보면, 초점을 둔 시야 바깥의 전의식적 지각이 우리의 일상에서 중요한 체험이 됩니다.

24개의 작품은 땅과 하늘, 사람과 자연, 주체와 대상 같은 서로 반대되는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의 본질적 아름다움인 일상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진 = 손문 건축가는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노트에 그림이나 글로 기록해 두는 습관이 있다”라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 13구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는 그의 손때가 묻은 크고 작은 노트들이 연도별로 책장에 꽂혀 있었다.

Q: 작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었고, 이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S: 가장 큰 도전은 영성과 예술을 결합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공간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철학적 메시지를 함축해 전달하는 일이 어렵지만 중요했습니다.

이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저는 끊임없이 자연 속에서 영감을 받고 묵상과 기도를 통해 내면의 평안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또한, 다양한 재료와 기술을 실험하며 최적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예술은 비트루비우스가 이야기한 구조, 기능, 미의 개념뿐만 아니라 내면의 영성 혹은 진리를 표현하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건축가로서 사물과 우주를 보는 방식인 “영성의 구축” 안에서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었고, 생명력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2024년에 발간된 『사계(四季), 스물네 개의 공간(空間)』 도록은 손문의 ‘영성의 구축’ 철학을 바탕으로, 순환하는 24절기의 자연 속 생명의 질서를 다룬다.

사진 = 2024년에 발간된 『사계(四季), 스물네 개의 공간(空間)』 도록은 손문의 ‘영성의 구축’ 철학을 바탕으로, 순환하는 24절기의 자연 속 생명의 질서를 다룬다. 손문 건축가는 “건축은 어둠 속에서 빛을 보게 되는 것이고, 겨울이 지나 봄이 찾아오는 것이며, 죽음에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Q: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S: 작품은 관객과 만날 때 비로소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합니다. 예술은 하늘의 진리를 비추는 반사체라고 믿습니다. 작품이 관객과 만날 때, 제 역할을 다한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자연과 삶의 리듬을 느끼고, 자신과 주변 환경에 대해 깊이 생각하길 바랍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잊히기 쉬운 내면의 평안과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마누엘 칸트는 “우리는 자연 속에서 신의 손길을 만난다”고 했습니다. 저는 자연과 영성적 경관을 통해 병든 자들의 마음에 치유를 주고, 새로운 시각을 체험하길 바랍니다.

이 창조적 생명 에너지의 선순환이 제 건축가로서의 소명, 즉 ‘영혼을 깨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시퀀스(범우사,2022)』와 『사계(四季)』 공통적으로 소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계신데, 소명을 이루셨는지?

A: 소명은 단순히 성과나 결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소명 그 자체로 이미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봅니다. 저는 소명을 긴 영적 성장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목적을 발견해 가는 긴 여정입니다. 그 여정에서 때로는 깨어지고, 때로는 인내하며 시간을 농축해 가는 과정이 소명적 삶을 이루는 것 같습니다.

이런 영적 성장 과정에서 나온 창작물들이 글과 이미지로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너무 괴로워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딱 한 걸음만 더 나아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노력만이 우리를 성장하게 만듭니다. 그 성장은 우리의 의지만큼이나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냅니다.

하지만 성장만큼 중요한 것은, 고도의 피로가 몰려올 때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저는 자연을 통해 생명의 질서 속에서 안식을 찾는 법을 배웠습니다.

뜨거운 여름날의 땀방울이 있어야 추수의 계절에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은 후 찾아오는 혹독한 겨울은 오히려 우리의 영혼을 뿌리내리게 해준다고 믿습니다.

『시퀀스(범우사, 2022)』가 진리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 의식을 이야기한다면, 『사계(四季)』는 뿌리를 키우는 시간,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묵상하고 치유하는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다음 작품에서 이 고뇌와 연단의 시간이 누군가의 삶에 빛과 소금이 된다면, 그때 소명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묵상의 시간과 다시 깨어 도전하는 소명 의식을 멈추지 않을 생각입니다. 

사진 = 2024 제주서보미술문화 공간 공동개관전 ‘섬, 사람을 잇다 - 여기, 바람이 머물다’의 ‘Major heat, 대서(大暑)’ 작품 앞에서 인터뷰 중인 손문 건축가

Q: 이번 제주도에서 열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32인 작가 단체전 ‘섬, 사람을 잇다 – 여기, 바람이 머물다’에 참여하게 된 소감은?

S: 어렸을 때, 큰 꿈을 안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후 미국, 중국, 프랑스를 거치며 매일 새로운 곳에서 나의 소명과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했죠. 대한민국의 건축가로서, 세계에 한국의 미감과 건축 전통, 그리고 문화유산을 알리는 소명은 단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에서 제 작품이 이강소, 민정기, 서용선 같은 한국 현대 미술의 거장들과 함께 전시되는 것은 정말 큰 영광입니다. 특히 해외에서 활동하며 우리나라에 대한 역사적 소명을 항상 가슴 속에 품어왔기에, 이번 전시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남북이 분단된 유일한 국가입니다. 코로나 이후의 혼돈과 위험 속에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공동선이라고 생각해요. 제 건축적 선언인 ‘영성의 구축’을 통해 남북한의 전쟁을 종전하고, 평화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것이 저의 시대적 소명이라고 믿습니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Major heat, 대서(大暑)’는 이러한 소명을 담은 작품입니다. 북의 거칠고 투박한 바위와 남의 자유롭고 아름다운 바다가 하나로 어우러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했습니다.

저는 한반도가 통일되어, 목포에서 출발한 열차가 파주를 지나 평양, 신의주를 거쳐 중국과 유럽까지 이어지는 꿈의 실크로드가 열리기를 희망합니다. 어둠이 깊어지면 새벽이 오듯, 건축이 한반도 통일의 첫새벽을 열어가리라고 믿습니다.

손문 작가의 작품 “Major heat, 대서(大暑)”는 (사)케이메세나네트워크 주최, 서보미술문화재단 주관으로 7월 16일부터 9월 8일까지 제주도 저지리예술인마을에서 열리는 전시 ‘섬, 사람을 잇다 여기, 바람이 머물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