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의 야구 이야기] 할아버지 이만수
[이만수의 야구 이야기] 할아버지 이만수
  • 박희윤 기자
  • 승인 2024.08.27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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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헐크파운데이션)
(사진_헐크파운데이션)

23일 저녁 7시 30분에 사랑하는 최홍섭 아우로부터 카톡이 날라 왔다. 무슨 내용인지 보았더니 어린 여학생이 친구와 피켓을 들고 응원하는 모습이 TV에 잡혔다. 23일 대구에서 삼성 팀과 롯데 팀이 야간경기 하는 도중에 아우님이 나에게 사진을 보낸 것이다.

아우님이 보낸 사진을 보았더니 어린 여학생이 큰 글씨로 이렇게 적었다.
'할아버지는 이만수'
'아빠는 이승엽'
'나는 구자욱'

또 한 장은 이승엽 선수(36번)와 양준혁 선수(10번), 그리고 나(22번)의 영구결번이 걸려 있는 사진이다.

아우님이 보낸 사진을 보는데 순간 무언가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어린 여학생이 나를 알고 글을 썼을까? 아우님이 보낸 사진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밤이다...

이 날 밤을 꼬박 새운 것 같다. 분명 잠자리에 들었지만 갑자기 옛날 프로야구 초창기부터 시작해 삼성라이온즈 선수시절 끝날 때까지 오버랩 되면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날을 지새웠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할 때만 해도 나는 24살이었다. 그 시절만 해도 솔직히 아무 것도 모른 채 오로지 야구 하나만을 위해 밤잠을 설쳐 가며 정말 열심히 운동했다.

그랬던 청년이 어느새 70을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대구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포에버22 회원들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나의 팬이 되었던 분이 있다. 그분은 7살에 아빠의 손에 이끌려 대구시민야구장을 처음 찾았다고 한다.

그 날 따라 4번 타자 이만수 선수가 홈런을 치고 포수의 자리에서 고함을 지르는 것을 보고 팬이 되었다는 7살의 예쁘고 귀여운 어린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어 의사가 되어 있다.

그리고 포에버22 회장으로 계셨던 김애란 회장님은 목포 아가씨인데 대학 1학년부터 나의 경기를 보고 푹 빠져서 열렬한 팬이 되었다고 한다. 그 아름답고 예쁜 아가씨는 무려 40년 가까이 나의 팬이 되었다. 김애란 회장님은 나의 플레이 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목포에서 광주로, 대구로, 대전으로, 서울로 다니면서 경기를 보았다고 한다.

오늘 피켓을 들고 있는 귀엽고 예쁜 여학생도 머지않아 야구를 사랑하는 멋진 아가씨로 성장하리라 믿는다. 포에버22 회원들도 그런 삶을 오래 전부터 살아 왔기 때문이다.

사실 아직도 나이 든 세대들은 걱정 아닌 걱정을 할 때가 있다. 어린 여학생들이나 아들들이 공부하지 않고 야구에 푹 빠지면 장래가 잘못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한다. 내가 선진야구의 고장인 미국에서 10년 동안 그들과 함께 야구를 하고 지켜 보면서 느낀 것은 그들의 삶에서는 스포츠를 빼면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로 삶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스포츠가 얼마나 큰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모른다.

어른들은 자라나는 자녀가 어릴 때부터 야구만 좋아하게 된다면 혹 공부에서 친구들보다 뒤쳐지고 잘못 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은 야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인생의 교훈을 배우고 정정당당한 승부정신을 익힐 것이며 야구에만 있는 희생타를 통해 남을 섬기는 자세도 습득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자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가는 멋진 자녀가 되리라.

24일 이른 새벽, 대구 내려가기 전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삼총사가 사우나에서 만났다. 어제 밤늦게 내가 아끼는 아우님으로부터 받은 사진을 놓고 자연스레 이야기 꽃을 피웠다.

어떻게 어린 여학생이
'할아버지는 이만수'
'아버지는 이승엽'
'나는 구자욱' 
이런 피켓을 들었을까?

어떻게 나의 현역시절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어린 여학생이 나를 알고 피켓을 들고 응원할 수 있느냐고 했더니, 유기호 대표가 웃으면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자기 할아버지 때는 이만수 선수를 응원 했고' 
'자기 아버지 때는 이승엽 선수를 응원 했고'
'자기는 구자욱 선수를 응원 한다'는 뜻이란다.

유기호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니 맞는 말인 것 같다. 다만, 피켓을 들고 응원하는 어린 여학생이 어떤 계기에서 그렇게 적었는지 언젠가 만날 기회가 있다면 꼭 물어 보고 싶다.

[글 /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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