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의 야구 이야기]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있다
[이만수의 야구 이야기]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있다
  • 박희윤 기자
  • 승인 2024.09.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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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수 이사장(사진_헐크파운데이션)
이만수 이사장(사진_헐크파운데이션)

지난 8월 14일부터 17일까지 3박 4일 동안 여름 방학을 맞아 손자와 며느리, 그리고 큰아들이 집에 놀러왔다. 손자가 할머니를 너무 좋아해 자주 집에 놀러오거나 아니면 우리가 큰아들 집에 놀러간다.

두 아들이 모두 결혼했지만 아직 손자는 한명 밖에 없다. 그래서 손자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여름 방학을 맞아 몇일전부터 아빠와 엄마를 졸라 할머니 집에 놀러가자고 해 이번에 3박 4일 동안 놀러왔다.

손자가 할머니를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밤마다 잠들기 전에 몇시간이고 이야기 해주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애기 때부터 늘 할머니가 손자를 재우기 위해 9년 동안 이야기 해주는 버릇으로 인해 할머니가 이야기 해주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는 편이다. 거기다가 할머니가 어린아이 눈 높이에 맞추어 음식을 요리할 때마다 손자 데리고 같이 요리하는 방법들을 가르쳐 준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오면 애기 때부터 목마 태워다주고, 업어주고, 야구 놀이하고, 숨바꼭질 놀이하고, 칼싸움하다보니 할아버지만 보면 업어 달란다. 애기 때는 잘 몰랐는데 한살씩 먹어갈수록 점점 체중이 불어나고 나 또한 한살씩 먹어갈수록 힘이 쇠약해 지다보니 이제는 손자를 업어주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손자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놀이터에 가서 달리기 시합하는 것이다. 현역시절에도 잘 달리지 못했는데 손자가 달리기 시합하자고 해 이제는 손자한테도 달리기 경주를 하면 할아버지가 질 때까 많다. 아니 이제는 9살 된 손자와 달리기 하면 대부분 진다. 

손자가 달리기 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할아버지와 야구하는 것이다. 할아버지와 야구하면 손자가 친 볼이 홈런이라도 되는 날에는 신이나서 홈런이라며 소리를 지르면서 다이아몬드를 한바퀴 돈다. 손자가 양팔을 들고 신이 나서 다이아몬드 도는 모습을 볼 때면 어쩌면 할아버지 현역시절과 너무나 똑 같아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이렇게 한바탕 야구하다보면 어느새 옷이 다 젖는다. 땀을 뻘뻘 흐리면 할아버지와 사우나 가는 것을 좋아해 빨리 사우나 가자고 한다. 손자와 단둘이 사우나 가서 사우나하면 천하를 다 얻은 느낌을 받는다. 아빠랑 사우나를 자주 다녀서 그런지 사우나를 얼마나 좋아하는 모른다. 요즈음 할아버지와 사우나 하면 한시간은 기본이다. 이제는 손자와 같이 사우나 할 때면 직접 할아버지 마사지 해 준다며 돌아서란다. 고소리 같은 작은 손으로 어깨와 목을 마사지 해 줄 때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지난 8월 16일 이른 아침에 손자 손을 잡고 둘이서 영화 구경갔다. 9살 되도록 할아버지와 단둘이 영화 구경가기는 이날이 처음이다. 물론 엄마와 아빠랑 여러번 영화 구경 갔지만 할아버지와 영화 구경가기는 이날이 처음이다. 

영화 구경가기 위해 미리 예약도 했고 당일날 영화관에 가서 손자가 좋아하는 팝콘과 콜라 그리고 구운 오징어 사들고 영화 구경갔다. 이날 영화는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2' 였다. 이미 '인사이드 아웃' 첫편을 보았는지 영화가 시작하기 전부터 할아버지한테 한명씩 다 설명한다.

영화 보는 내내 손자와 팝콘을 같이 먹으면서 재미있게 영화 보았다. 영화 중간 중간마다 손자가 팝콘과 콜라를 주면서 '할아버지 드세요' 하는 것이다. 고소리 같은 손으로 팝콘을 집어서 할아버지 입에다 넣어준다.

한시간 40분이나 되는 영화를 꼼짝하지 않고 재미있게 보는 손자를 보면서 '아~ 이제 다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어린아이로 생각했는데 어느새 9살이 되어 이제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아이로 자랐다.

이날(16일)은 아침부터 영화를 구경하고 오후에는 온 가족이 '을왕리 왕산마리나항'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특히 왕산마리나항에 가면 새롭게 단장한 '라면 도서관'이 생겨 맛나게 라면도 직접 끊여서 먹었다.

저녁시간에는 '켈리클럽'에 가서 놀았다. 이날 하루 종일 손자와 함께 노는 바람에 온 가족이 다 녹초가 되고 말았다. 손자의 체력이 얼마나 좋은지 할아버지와 할머니 엄마와 아빠 모두 힘을 다 합쳐도 손자의 체력에는 따라갈 수 없었다.

세상 사람들은 오로지 높은 정점에 올라 세상으로부터 인정 받았을 때만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런줄 알고 젊은 시절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눈에 보이는 세상의 영광을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끊임 없이 달려왔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모든 것들을 다 쟁취하고 이루어 보았지만 그것이 영원하지도 않고 또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함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지나온 시간들을 회상하면 정말 내 삶에서 잊을 수 없는 수많은 일들로 인해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물론 많은 어려움과 고난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사랑스러운 손자를 보고 있노라면 지치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한 순간에 다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평생 야구라는 한길을 달려오면서 요즈음처럼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처음이다. 중학교시절부터 시작된 야구선수가 할아버지가 된 지금까지 요즈음처럼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은 없다.

현장에서 떠나도 여전히 재능기부를 위해 국내와 라오스 및 베트남 그리고 캄보디아로 오가면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없고 쉬는 날이 없어도 가끔 한번씩 보는 손자로 인해 피로했던 몸들이 한순간에 싹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요즈음 손자도 야구에 푹 빠져 할아버지만 보면 야구 놀이 하자며 야구배트와 볼을 갖고 온다. 어디서 보았는지 ( TV 야구중계 , 야구복 입은 선수만 보면 “ 이만수 ” 라며 소리를 지른다 ) 잘 치면 홈런이라며 좁은 공간을 뛰어 다니면서 즐거워 한다.

이제 손자만 오면 야구 놀이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지금도 손자와 야구 놀이 하면서 늘 꿈에만 그리던 일들이 이루어져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야구로 인해 영광을 얻었고, 노년에는 손자로 인해 천하를 다 얻었다.

[글 /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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