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에 야구를 전파한지 올해가 벌써 11년째가 되어 가고 있다.
되돌아 보면 보람된 일도 많았지만 때론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일들도 있었고, 그때마다 도움의 손길들로 인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내 조심스런 행보가 알려지고부터 여러곳에서 감사하게도 많은 도움의 손길이 온다. 예전 물품들의 물류비는 '헐크파운데이션'에서 힘들고 어려워도 감당 해왔지만 펜데믹 이후엔 물류비가 두배 이상 오르는 바람에 재단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지난 1월 은혜의교회 이성열 집사로부터 친구가 신발업을 하는데 동남아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좋은 일을 하고 싶다며 '신발 8000컬레를 선물하고 싶다'며 연락이 왔다. (시가로 2억원이 된다.) 신발업을 하는 대표와 미팅 날짜를 잡고 대화를 나누는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신발을 선물하겠다는 것이다.
나은택 대표는 LUT 신발 사업을 하시는 분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내가 특히 좋아하는 브랜드 '프로스펙스' 신발을 무려 8000컬레나 보내주셨다.
동남아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이 신발이다. 지금 이 신발은 라오스 오지에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이미 절반은 전달이 된 상태다. 우리나라 최고급 신발을 받고 청소년들이 기뻐하며 잠잘 때 품에 앉고 잤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평생 야구만 하던 내가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동남아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달하는 것 같아 감사할 뿐이다...
허나 지난번 신발 8000켤레 중에 절반만 동남아로 보낼 때 펜데믹 이전 같으면 어떻게 해보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물류비로 인해 재단이 타격이 상당하여 이제는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귀한 도움이 있어도 전달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러나 '헐크파운데이션' 재단을 지속적으로 오래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때론 천천히 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성경에 보면 누가복음 14장 28절에서 30절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찐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사실 물품비보다 물류비가 더 비쌀 때가 있어 아까운 물품들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야구하는 라오스 루앙프라방 어린이들에게 주기 위해 신발중 절반은 이미 보낸 상태다. 이제 남은 것은 야구 용품과 4000켤레 신발을 루앙프라방에 보내는 일이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물류비에 대한 뾰족한 수가 없어 '헐크파운데이션'에서 첫번째 물류비를 무리하여 충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규모를 정확하게 세우지 않으면 재단도 어려울 수 있어 늘 신경쓰는 편이다. 물론 그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단에서 무작정 다 해 줄 수는 없는 상황이다.
한달이 넘도록 두번째 물품들을 라오스 루앙프라방에 보낼 수 없어 부산 창고에 쌓아 둘 수 밖에 없다. 헐크파운데이션 조경원 단장이 사비로 창고를 빌렸지만 마냥 신발과 야구 용품들을 쌓아 둘 수는 없는 상황이다. 우리들의 어려움을 들은 여러 사업가들이 도움을 준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막상 날짜를 정하면 아무 소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만 믿고 창고에 있는 물품들을 다시 정리하고 옮기려고 하면 캄캄 무소식으로 인해 다시 기다려만 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경비만 쌓여만 갈 뿐이다. 그렇게 힘들게 마음 조리며 기다리고 있는데 베트남에 있는 박효철 감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난번 다낭에서 야구하는 후배가 찾아온 것을 기억하십니까?' 하는 것이다. 청주의 안준영 대표가 나와 박효철 감독과의 만남을 가지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베트남 다낭에 들어왔다. 그날이 7월 27일이다. 경기로 인해 후배와 길게 이야기 나누지 못하고 조용한 시간에 다음에 또 만날 것을 약속하고 다음달 8월 28일에 인천에서 만났다.
박효철 감독과 우리는 안준영 대표가 사업 때문에 우리를 만나보고 싶은 줄 알았다. 그러나 안준영 대표는 그런 뜻이 아니라 정말 베트남 다낭에서 야구대회하는 것을 보기 위해 일부러 비행기를 타고 찾아왔다. 숨막히는 더운 날씨에 경기하는 장면을 보며 처음으로 야구인으로서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안준영 대표는 천안북일고등학교 2학년까지 야구 선수로 활동한 선수였다. IMF 당시 아버님의 사업이 어렵게 되자 아버님 일손을 돕는다는 것이 그만 잘못 되어 오른손 두번째 손가락이 절단 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 일로 인해 야구를 접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사업가가 되기까지 숫한 어려움과 역경을 만났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일어나 사업을 일으킬 수 있었다고 한다. 쉽지않지만, 직원들과 어려움 없이 잘 할 수 있고, 도움을 주고 싶어하여 지난 8월 28일 인천에서 만났다. 물론 안준영 대표를 만나기 전에 베트남에 있는 박효철 감독한테 어떤 상황인지 대충 들어서 알게 되었다.
안준영 대표는 나를 만나기 위해 청주에서 인천까지 직접 찾아왔다. 두시간 가량 안 대표와 만나 그동안 있었던 일과 앞으로 전개될 미래에 대해 듣게 되었다. '야구를 접고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야구 구경도 하지 않았고 친구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감독님의 SNS를 보며 베트남 다낭에서 경기하는 장면을 보고 싶어 일부러 비행기를 타고 들어갔다”는 것이다.
40도가 되는 무더운 날씨에 베트남 젊은 선수들이 땀을 흘리며 열심히 경기하는 장면을 보며 갑자기 가슴에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끓어 오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20년 넘도록 야구를 끊고 야구를 생각지도 않았던 안 대표가 다시 야구를 생각하게 되었고 또 열악한 환경에서 야구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어 나를 찾아온 것이다.
다낭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사배”는 심판이 없었다면 야구라고 말하기 조차도 힘든 상황이었다. 제대로 된 마운드 조차도 없었고 또 급하게 한국에서 구입한 베이스가 하루 만에 선수들의 스파이크로 인해 거의 다 찢어진 상태였다. 안준영 대표는 이런 열악한 환경과 그라운드를 보며 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 뭉클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안준영 대표를 가슴 아프게 했던 것이 가니씩 마운드였다. 간단하게 나무로 만든 마운드인데 깔판이 떨어져 투수가 볼 하나씩 던질 때마다 다시 깔판을 고정시켜야만 던질 수 있었다.
야구인 후배로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어 '무엇을 도와주면 됩니까?'하기에 지금 베트남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 매달 나가는 통역비를 부담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니깐 9월 20일(회사에서 매달 20일 돈을 지출한다고 한다.) 보내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더 필요한 것이 없습니까? 묻기에 '사실 라오스 루앙프라방에 물품을 보내야 하는데 물류비가 없어 못 보내고 있다'고 하니 그것도 회사에서 부담하겠단다. 그러면서 그 경비도 다음달 9월 20일에 함께 보내주겠단다.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이들과 함께 하지 않았다면 골치 아프고 마음 졸이는 일 없이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물질적 풍요보다 자아실현과 베푸는 삶을 통해 얻는 정신적 풍요를 누리는 것이 나는 훨씬 가치 있고 보람된 삶이라고 굳게 믿고 한걸음씩 내딛고 있다. 이런 나에게 수많은 도움의 손길들과 함께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야구를 통해 세상에 뜻깊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야구인으로 감사할 뿐이다. 더욱이 열악한 환경에서 야구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야구를 통해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일은 나에게 숙명과도 같은 일이기에 나의 인생철학인 “Never ever give up” 삶으로 내게 주어진 야구 인생 2막의 남은 삶을 국내 재능기부와 야구 불모지 동남아시아에 야구를 전파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난 54년 동안 흔들림 없이 오로지 야구만 바라보며 한 길을 달려왔음에 내 자신과 모두에게 감사하다. 치열했던 야구현장을 함께 누볐던 수많은 사람들, 현장을 떠나 야구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뜻깊은 일들을 함께 해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글 /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