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4일 가족이 다 함께 대전 현충원에 내려가 아버님 어머님을 위해 추도예배를 드렸다.
아버님이 소천하신지 어느덧 12년 되셨고 어머님은 6년 되셨다. 먼저 12년 전에 아버님이 대전 현충원에 안장 되었고 어머님이 뒤이어 현충원에 합장하셨다.
이날은 아버님과 어머님이 많이 보고 싶어 대전에 있는 현충원에 온 가족이 다 함께 내려갔다. 어머님이 돌아 가신지 어느덧 6년이 되었다. 어머님이 살아 계셨다면 “애비야 많이 먹어라. 그래야 큰 일을 할 수 있단다. 좋은 일도 건강해야 할 수 있단다.“ 말씀 하셨을 어머님….
6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무 때고 언제라도 불시에 어머니 집에 놀러가면 늘상 그러셨듯이 맛난 밥상을 차려 주시던 어머님... 평생 사랑으로 저희들을 돌보아 주시고 감싸 주셨던 어머님은 이제는 이 땅에서 다시는 볼 수가 없다.
평생 운동선수 뒷바라지 하시며 한 명 하기도 힘든 시절에 두 아들(둘째 아들 야구, 막내아들 테니스)을 희생과 헌신 그리고 열심으로 후원해 주신 어머니가 안 계셨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이 당시만 해도 운동선수 한명 키우는데 얼마나 힘이 들고 어려운 시절이었는지 모른다.) 3년여의 긴 투병 중에 계셔도 병실에 들릴 때마다 “엄마 사랑해요“ 하면 빙그레 웃으시며 “나도 사랑해“ 하시던 어머니가 벌써 그립다.
“1ㆍ4후퇴 때 남쪽으로 내려와 온갖 고생 속에 억척 같이 자식들을 키워내신 어머니의 희생에 보답 한번 제대로 못하고 죄송함에 부끄럽기만 합니다. 이제라도 어머니께 보답하는 길은 새벽마다 아들을 위해 기도했던 어머니의 기도를 항상 기억하고 다른 사람의 삶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어머님 고향은 평양이고 아버님 고향은 함경북도다. 두분 다 이북 분이라 명절만 되면 고향에 홀로 계시는 부모 형제로 인해 늘 마음에 그리움을 나타내곤 하셨던 기억이 난다.
두분 다 이북 분이라 그런지 남한의 음식보다는 유난히 명절만 되면 이북 음식을 많이 만들곤 했다. 우리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만두와 빈대떡이다. 어머님하고 어린시절부터 함께 만들었던 만두…. 만두 안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어머님이 직접 손수 만드시고 나는 어머님과 만두피를 밀면서 어린시절을 보냈던 추억들이 많이 생각이 난다. (지금도 어머님이 만드신 만두가 생각나면 권혁돈 감독이 가르쳐 준 개성손만두 집으로 가 만두를 먹고 많이 사가지고 온다.)
50년 넘도록 오직 한길로 달려올 수 있도록 어린시절부터 기반을 만들어 주시고 또 운동 잘 할 수 있도록 헌신과 사랑으로 돌보아 주셨던 부모님... 지금도 아버님의 말씀이 나의 귓전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한번 시작했으면 중간에 포기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야구를 평생 업으로 생각하고 죽을 때까지 열심히 해야 한다.”
아버님은 평생 나라를 지키신 분이라 자녀들에게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가장 먼저 나라를 생각하고 나라를 위해 어떻게 헌신할 것인지 늘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로지 평생을 아들을 위해 뒷바라지 하셨던 부모님 두 분이 이제는 이 땅에 안 계신다. 지금도 다가올 추석을 생각하면 아버님과 어머님이 많이 보고 싶다. 아버님과 어머님이 유난히도 좋아하시고 즐겨 드셨던 냉면과 만두 그리고 빈대떡… 나도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지금도 여전히 이북식 냉면과 만두를 즐겨 먹고 있다.
비록 지금은 부모님이 이 땅에 살아계시지 않지만 냉면 만큼은 평생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며 좋아하셨던 모습이 나의 뇌리에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한 그릇의 비빔냉면과 물냉면으로 인해 청년시절과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함흥비빔냉면과 평양 물냉면을 찾곤 한다.
어머님 ,아버님~ 사랑합니다.
많이 보고 싶습니다.
[글 /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