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재즈칼럼니스트 황덕호의 시선으로 본 김우영 작가의 “완급의 시선”
[칼럼] 재즈칼럼니스트 황덕호의 시선으로 본 김우영 작가의 “완급의 시선”
  • 전진홍 기자
  • 승인 2021.05.25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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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작가 개인전 ‘Poetics of Tranquility’ (평온의 시학)
사진 = JJ중정갤러리에 전시 중인 김우영 작가의 작품

[잡포스트] 김우영 선배를 보면 늘 부럽다. 삶에 리듬이 있어서다. 그를 보면 늘 느긋함과 치열함, 부드러움과 강렬함, 예민함과 관대함, 우울함과 해맑음이 공존한다. 심지어 그 상반된 성격의 것들을 스스로가 조절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매일 자기 방에 틀어박혀 음악을 듣고 곡을 고르고 글을 쓰면서 주어진 작업 기일을 맞추기 위해 일정한 박자와 패턴으로 살고 있는 나로서는 도무지 흉내 낼 수 없는 모습들이다.

가끔 선배를 만나는 날이면 나는 각오를 한다. 오늘은 술을 좀 먹겠구나. 코로나 유행 이후 그 풍경은 사라졌지만 해가 지기 전부터 시작된 선배와의 술자리는 새벽이 지나서까지 계속된 적이 허다하다. 그때 선배의 모습은 그 어떤 시간적 구속에서도 벗어난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체력만 허락한다면 그의 술자리는 영원을 향해 달려갈 것만 같은 기세다.

가는 술집마다 주인들은 선배를 반긴다. 그 이유는 몇 번만 동석하면 알 수 있다. 아무리 술을 마셔도 조용하면서도 다정다감한 그의 성품 때문이다. 그런 자리에 가면 우연히도 선배의 지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화가, 건축가, 음악가, 출판인, 디자이너, 게임 개발자 심지어 산악인, 코미디언까지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누구를 만나던 김우영 선배의 대화는 막힘이 없고 그 대화 속에서 그의 기분은 늘 유쾌하다. 한 마디로 그는 그때마다 자신을 느긋하게 풀어놓는다.

그런 자리에서 그는 거의 자기의 일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요즘 무슨 사진을 찍고 있는지, 작품 때문에 무슨 고민을 하는지 나는 들은 적이 없다. 그러다가 헤어질 때 즈음이 되면 그는 한마디 한다. 내일모레 사진 찍으러 들어간다. 그런 말이 있으면 짧아야 한 달, 길면 몇 달에서 일 년 가까운 긴 시간까지 그는 나 같은 주변 사람들(반드시 연락할 필요는 없는 술친구들)과 연락을 끊는다. 강원도나 제주도에 들어간다고 한 적도 있었고 어느 때는 네팔, 미국의 서부지역 등 장소도 다양했다. 그 기간 동안에 어쩌다 전화를 하게 되면 그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통화는 간단히. 그는 딱 대답해야 할 말만 하고 통화를 끝낸다. 그런데 몇 해 동안 옆에서 그를 보면서 이제 그것이 그의 완급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진 = JJ중정갤러리에 전시 중인 김우영 작가의 작품

삶에 완급이 있다는 것은 쉴 줄 알고, 놀 줄 알고, 제대로 산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완급이라는 것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음을 나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깨달았다. 눈부시게 화창했던 5월 중순 평창동 숲속과 접해 있는 JJ중정갤러리에 들어섰을 때 나는 완급의 힘에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눈 내린 울창한 숲(담양 소쇄원)은 거대하면서도 세밀했으며 검푸른 바다의 물결(<무제> 2번)은 압도적이면서도 실크처럼 부드러웠고 흰 벽면 위를 지나가는 나무 기둥들은 기(氣)로 뭉쳐있지만 부드럽게 차고 나간 붓놀림 같았다.(연작 <한옥>)

소설가이자 사진에 조예가 깊은 제프 다이어는 “모든 사진에는 소리가 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눈 내리는 소쇄원 숲의 사진들은 바람에 부딪는 나무들의 소리, 심지어 눈 내리는 소리마저 내고 있으니 <무제>에서 나지막이 들려오는 먼 파도 소리를 듣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한옥>의 여러 작품은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완벽한 고요이며 침묵이었다. 심지어 소쇄원의 눈밭을 굽이굽이 흘러가는 작은 내(川)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 마치 소리 없이 우는 울음 같았다.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 사진. 이 역설의 역설은 압도적이면서도 한없이 깊은 슬픔을 전했다. 그곳에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러자 어느덧 내 마음은 전시회의 제목처럼 평온해졌다.

선배는 이 장면을 만나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기다렸다고 했다. 그 기다림 역시 완급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동시에 자신의 마음을 조였다가 푸는 시간 속에서 그의 눈은 사물의 무엇인가를 비로소 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시간은 그리던 풍경을 만나는 시간이자 자신의 눈을 여는 시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긴 시간 속의 완급이 없다면 사람은 깨우침을 얻지 못한다. 늘 풀려있으면 혹은 늘 조여 있으면 사람은 외부를 늘 똑같이, 당연히 여기게 된다.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이란 없다. 모든 것이 당연할 때 사람의 이성과 감성은 마비된다. 한옥의 돌과 나무가 어떤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지, 들판의 실개천이 어찌나 슬픈지 당연함으로는 알 리가 없다. 사람의 심성에 완급이 있을 때 비로소 그 눈은 사물을 포착한다. 선배의 전시회는 아둔한 내게도 그 사실을 전해주었다. 그러므로 ‘평온의 시학’에 담긴 그의 사진들은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 자연의 아름다움임과 동시에 김우영의 마음, 그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글/재즈칼럼니스트 황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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