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東西)와 고금(古今), 무대와 객석이 소통한 공연 ‘태평볼레로’
동서(東西)와 고금(古今), 무대와 객석이 소통한 공연 ‘태평볼레로’
  • 서진수 기자
  • 승인 2023.11.08 1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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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청 태평무와 스페인 볼레로 춤의 환상적인 콜라보 '성공' 평가
전통 미학의 반전과 현대적인 소통... 마음이 활짝 열리는 다원적이고 글로벌한 공연
사진=재인청춤전승보존회
사진=재인청춤전승보존회

[잡포스트] 서진수 기자 =과천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재인청춤전승보존회(회장 정주미)가 주관한 ‘태평볼레로’ 공연이 지난달 28일(토) 과천시민회관 소극장에서 펼쳐져 박수갈채를 받았다.

‘태평볼레로’는 순환과 반복의 두 축을 컨셉으로 한 공연이다. 모두 3막인 전체의 구성은 지구의 공전과 같은 순환으로, 11개의 종목 레퍼토리는 각기의 춤 속에서 지구의 자전과 같이 동어 반복의 춤사위로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덕분에 반복되는 일상이, 반복되는 사계가 우리의 일상과 일생을 변화시킨다는 스토리를 확보한다.

망자를 저편으로 보내는 의식으로 1막이 시작된다. 망자와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우리들은 온 마음을 다해 그를 보낸다. 동시에 우리는 이편에 남아, 남은 우리의 슬픔을 위로하고 우리의 삶을 이어가는 절차, 곧 장례의식이 거행된다.

따로 해설자를 두지 않은 이번 공연은 자막을 통해 힌트를 제공했다. 1막의 부제가 ‘영원한 여정’이라 규정하여 우리는 예외 없이 죽는다는, 그래서 죽음의 반복 또는 이별의 반복을 각인시킨다. 첫 레퍼토리이자 독무인 ‘통곡춤’은 반복되는 앉은사위로, 두 번째 레퍼토리이자 군무인 ‘간다 간다 나는 간다’는 반복되는 동선만으로도 극심한 슬픔을 객석에 전이시키고야 만다. 생사의 길이 저편과 이편으로 극명하게 나누어지고 망자와 산 자가 약속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공존하는 의식, 객석에서는 눈물을 훔치는 이와 숨죽여 훌쩍이는 소통이 시작되고 있다.

사진=재인청춤전승보존회
사진=재인청춤전승보존회

2막에서는 본격적으로 살아남은 자들이 꿈꾸는 미래들을 다양하게 그려낸다. 다양한 꿈속에서도 2막의 첫 레퍼토리인 ‘아름다운 나라’로 춘 것은 막의 전환 역할만으로도 신선했다. 그리고 마지막 레퍼토리이자 다분히 공연 기획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명명인 ‘일상이 춤으로’에서는 경상도 민요인 ‘쾌지나 칭칭나네’를 반복과 변주를 극대화하여 춤음악으로 사용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다. 이는 이번 공연의 백미인 3장의 ‘태평볼레로’를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장치로 손색이 없었기도 하거니와 객석의 마음을 활짝 여는데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1막에서 조성된 이별의 아픔들이 순식간에 걷히고 객석을 신명으로 이끌었던 2막의 레퍼토리들이 출연자들에게도 유난한 즐거움을 선사했던 모양이다. 출연자의 한 사람으로 무대에 올랐던 김세철(대한민국 학술원 종신회원, 전 명지병원 원장) 씨의 분석은 출연자들의 연대 메커니즘을 엿볼 수 있어 눈길을 끌었다.

사진=재인청춤전승보존회
사진=재인청춤전승보존회

“독무나 군무 모두가 신체기능 특히 균형과 유연성, 동작을 개선시키는 효과는 비슷하지만 군무는 협동심과 사회성을 증가시키며 함께 원을 그리면 통일, 평등, 나아가 단합을 키울 수 있지요. 군무의 효과 변인에는 청각(음악을 들으면서), 시각(서로 마주 보면서), 촉각(서로 손을 잡으면서)이 있는데 그 중에 촉각이 가장 효과가 큰 것으로 연구 보고되었습니다. 일상이 춤으로 장에서 서로 손을 잡고(촉각) 원을 그리며 힘차게 돈 것이 객석과 무대를 더욱 하나로 단합시킬 수 있게 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이번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3막의 ‘태평볼레로’는 재인청 춤 태평무와 스페인 볼레로 음악의 콜라보가 환상적이었다. 마치 오페라의 아리아에 비견될 작품이었다. ‘전무후무한 역대급 작품’이라는 찬사를 쏟아낸 객석의 황윤주(작곡,지휘) 씨는 볼레로 음악을 지휘한 경험이 있지만, “우리 고유의 멋과 서양음악이 이토록 잘 어울렸나?”라며 혀를 내둘렀다.

사진=재인청춤전승보존회
사진=재인청춤전승보존회

제아이이예술단(줄타기)공연단을 이끌며 세계를 누비고 있는 홍성일 예술감독은 한국의 전통무용을 스페인 볼레로 음악에 절묘하게 매칭시키면서 이번 공연의 가치를 세 가지로 요약했다. “전통을 현대적으로 이끌고 오는 반전이 있다. 그래서 예술적 가치를 그대로 가져가되 대중성을 강화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답답하지 않았다. 마음이 확 열리면서 편안하게 흥겹게 소통이 되었다는 거다. 무엇보다 전통의 다양성 제고로 다원적이고 글로벌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게 대단히 고무적이다.”

이번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한 정주미 춤꾼은 “전래의 춤을 제대로 보존하고 전승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통의 미학을 훼손하지 않고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춤을 개척하는 것 또한 우리의 사명”이라 한다. “그래야 케케묵은 것이 아니라 켜켜이 묵혀 익은 전통의 향기가 객석으로 이끈다”고 힘주어 말한다. 우리 춤의 글로벌 경쟁력과 미래가 눈앞에 와 있음을 알 수 있는 공연이었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사진=재인청춤전승보존회
사진=재인청춤전승보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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