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포스트] 김진호 기자 = ‘직장에 다닌다’고 하면 여전히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유연근무제를 도입해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근로시간을 운용하도록 하는 회사가 적지 않다. 업무가 많을 때에는 일찍 출근한 뒤 늦게 퇴근하고, 처리해야 할 업무가 상대적으로 적을 때에는 늦게 출근해서 일찍 퇴근하는 식이다. 매주 또는 매달 정해진 총 근로시간만 채운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경우 회사 측은 해당 직원이 업무상 필요에 의해 초과근무한 시간을 산정해 연장근로 수당을 지급한다.
또는 업계 특성상 야근이나 특근, 초과근무가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출퇴근 시간이 불규칙해지는 경우도 있다. IT업계나 보안업계, 의료계가 대표적이다. 예정된 초과근무가 이뤄지기도 하지만 갑작스러운 문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기습 야근’이 이뤄지는 일도 허다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회사 측이 수당을 산정하기가 쉽지 않다. 직원이 야간근무 또는 초과근무를 한 구체적인 시간을 확인하기 어려울뿐더러, 정규 근로시간을 넘어 일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인사 및 급여 담당자의 업무가 과중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초과근무를 금지하거나 반대로 수당 없는 무급 초과근무를 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회사 측은 ‘포괄임금제’를 대안으로 떠올릴 수 있다.

◇ 각종 수당을 포함하여 임금을 지급하는 ‘포괄임금제’
포괄임금제는 말 그대로 모든 수당을 포괄하는 임금제다. IT 회사의 개발자로 일하는 근로자 A씨의 정규 근무시간은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지만, 버그가 발견되거나 서비스 장애가 발생하면 A씨의 퇴근 시간은 기약 없이 늦어진다. 이렇게 늦게 퇴근하고 난 다음날에는 상사의 재량에 따라 점심시간 이후에 출근하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회사는 물론이고 A씨 본인도 확실한 근로시간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럴 때 회사 측에서는 기본 연봉에 예상되는 각종 연장 근무나 야간 근무, 휴일 근무 등의 초과 수당을 더해 A씨에게 임금을 지급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별도의 근무시간 확인이나 수당 계산 없이도 A씨가 적절한 급여를 받으며 일할 수 있게 된다. 기업 측은 추가적으로 수당을 지급해야 할 책임을 덜게 된다. 이것이 바로 포괄임금제다.
회사 측과 근로자 측 모두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인데, 법률 상에 명시되어 있는 임금 제도는 아니다.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고 법적 분쟁 과정에서 법원 판례를 통해 인정된 제도다.
◇ 안전한 포괄임금제 도입 및 적용을 위한 조치
포괄임금제와 관련된 명확한 법률 규정이 없다 보니, 이 제도를 이용하고자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확실한 검토 없이 포괄임금제를 진행하다가 주요 요건을 빠뜨리기도 하고, 뜻하지 않게 포괄임금제 제도를 오용 혹은 남용하게 되는 일도 발생한다. 임금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포괄임금제로 인해 근로자 측과 갈등이 발생하면 법적 분쟁으로 번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기업 측은 포괄임금제 도입 전에 연관 판례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며 제도 설계를 먼저 진행해야 한다.
우선 근로계약서에 ‘위 금액은 연장, 야간, 휴일근로 수당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다’와 같은 문장을 삽입한 뒤 포괄임금제를 기반으로 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모호한 내용만 제시해서는 해당 계약의 유효성을 인정 받을 수 없다.

법무법인 인터렉스의 이재훈 파트너 변호사는 "기업이 포괄임금제를 도입하고자 한다면, 전체 임금이 정확히 어떤 수당을 어느 정도로 포괄하고 있는지 근로자 측에게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포괄임금제 계약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고, 근로자 측이 요구하는 수당을 추가적으로 지급해 줘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근로자 수가 적다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겠지만, 근로자 수가 많고 모든 직원에게 포괄임금제가 적용된 상황이라면 회사 측은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을 근로자들에게 추가 수당으로 지급해야 한다. 이미 포괄임금 명목으로 기본 연봉보다 더 많은 금액을 근로자들에게 지급해왔는데, 뜻하지 않게 더 많은 금전적 부담을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면 포괄임금제 계약을 맺을 때 정확한 포괄 범위와 금액 산정 기준 등을 밝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뿐만 아니라 △정확한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근로자 측에게 불리하지 않은 조건으로 포괄임금제 내용을 구성해야 하고 △이와 관련해 노사 합의 절차를 먼저 밟아야 한다는 점도 회사 측이 잊지 않아야 할 요소라고 설명했다.
근로시간이 명확하거나 근로자 측에 불리하게 포괄임금제가 적용되었거나, 노사 합의 절차를 생략한 정황이 확인된다면 포괄임금제의 효력이 인정되지 않으면서 회사 측에게 불리한 결과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변호사는 "포괄임금제를 잘 이용하면 기업과 근로자가 상생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다만 기업 측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는 기업 실정에 맞는 쪽으로 포괄임금제 내용을 설계해야 한다. 다른 기업의 사례나 법원 판례를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허점 없이 안전하게 포괄임금제를 도입 및 적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글/법률자문 도움 : 법무법인 인터렉스 이재훈 파트너 변호사]